곡명 : Silent Wind
작품 : 아르젠토 소마(Argento Soma) OP
작사 : 키타가와 케이코 (北川恵子)
작곡·편곡 : 핫토리 카츠히사 (服部克久)
노래 : 스가이 에리 (菅井えり)
원문 가사: Uta-Net · UtaTen 대조
※ 팬 번역·해설. 가사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 표기 : 원문 / 발음 / 직역
※ 영어 파트는 발음란·직역란 모두 원문 그대로 둡니다 — 沈黙の Angel의 Angel이 그렇습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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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なたの傷ついた心を 抱きしめ儚い夢を見る
아나타노 키즈츠이타 코코로오 다키시메 하카나이 유메오 미루
너의 상처 입은 마음을 끌어안고 덧없는 꿈을 꾼다
巡る時の流れいつか 堰き止めて溢れるこの思い [1]
메구루 토키노 나가레 이츠카 세키토메테 아후레루 코노 오모이
맴도는 시간의 흐름을 언젠가 막아서, 넘쳐흐르는 이 마음을
そっと沈めて…
솟토 시즈메테…
가만히 가라앉혀…
足早に通り過ぎる人たち
아시바야니 토오리스기루 히토타치
잰걸음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
移ろい続ける悲しみの色 [2]
우츠로이츠즈케루 카나시미노 이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슬픔의 빛깔
佇む私に囁きかける
타타즈무 와타시니 사사야키카케루
멈춰 선 나에게 속삭여오는
風の中 舞い降りる沈黙の Angel [3]
카제노 나카 마이오리루 침모쿠노 Angel
바람 속 춤추듯 내려오는 침묵의 Angel
ひとりきり虚ろな言葉飲んで
히토리키리 우츠로나 코토바 논데
홀로 텅 빈 말을 삼키며
想い出あつめて眠る夜にも
오모이데 아츠메테 네무루 요루니모
추억을 그러모아 잠드는 밤에도
まどろむ私に囁きかける
마도로무 와타시니 사사야키카케루
선잠 든 나에게 속삭여오는
風の中 舞い降りる沈黙の Angel
카제노 나카 마이오리루 침모쿠노 Angel
바람 속 춤추듯 내려오는 침묵의 Angel
乾いた音が聞こえてくる [4]
카와이타 오토가 키코에테 쿠루
메마른 소리가 들려온다
寂しさ 戸惑う指先に
사비시사 토마도우 유비사키니
외로움, 갈피 못 잡는 손끝에
そっといつまでも 二人
솟토 이츠마데모 후타리
가만히 언제까지나 두 사람
触れ合って 融けて行くときまで [5]
후레앗테 토케테 유쿠 토키마데
맞닿아 녹아갈 때까지
流れ星 誰も気付かなくても [6]
나가레보시 다레모 키즈카나쿠테모
흐르는 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도
夢語り はるか遠く響いて [7]
유메가타리 하루카 토오쿠 히비이테
꿈 이야기, 아득히 멀리 울리며
佇む私に囁きかける
타타즈무 와타시니 사사야키카케루
멈춰 선 나에게 속삭여오는
風の中 舞い降りる沈黙の Angel
카제노 나카 마이오리루 침모쿠노 Angel
바람 속 춤추듯 내려오는 침묵의 Angel
乾いた音が聞こえてくる
카와이타 오토가 키코에테 쿠루
메마른 소리가 들려온다
寂しさ 戸惑う指先に
사비시사 토마도우 유비사키니
외로움, 갈피 못 잡는 손끝에
そっといつまでも 二人
솟토 이츠마데모 후타리
가만히 언제까지나 두 사람
触れ合って 融けて行くときまで
후레앗테 토케테 유쿠 토키마데
맞닿아 녹아갈 때까지
あなたの傷ついた心を 抱きしめ儚い夢を見る
아나타노 키즈츠이타 코코로오 다키시메 하카나이 유메오 미루
너의 상처 입은 마음을 끌어안고 덧없는 꿈을 꾼다
巡る時の流れいつか 堰き止めて溢れるこの思い [8]
메구루 토키노 나가레 이츠카 세키토메테 아후레루 코노 오모이
맴도는 시간의 흐름을 언젠가 막아서, 넘쳐흐르는 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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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
이 곡에는 눈물도 울음도 없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 주해 여덟 개가 따라간다.
하나만 읽고 갈 거면, 이 곡이 왜 저기서 끝나는지를 적은 [8]을.
[1] 물의 사슬 — 울지 않는 곡의 눈물
이 곡에는 泣く(울다)도 涙(눈물)도 없다. 슬픔은 가득한데, 우는 사람이 없다. 대신 마음이 물이 되어 있다 — 溢れるこの思い(넘쳐흐르는 이 마음)가 이 곡의 눈물이다. 울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물의 은유로만 치환한 것, 그것이 이 곡의 절제다.
그 물이 곡 전체를 사슬로 흐른다. 堰き止める(막다) → 溢れる(넘치다) → 沈める(가라앉히다) → 融ける(녹다). 다만 첫 고리는 눈물에 걸려 있지 않다 — 둑이 막으려는 것은 시간이다(巡る時の流れいつか 堰き止めて). 흐르는 시간은 실어 간다. 시간의 수로에 둑을 쌓겠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둑은 아직 いつか(언젠가)의 것이지만 붙드는 일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 — 想い出あつめて(추억을 그러모아). 흘려보내지 않는 물은 차오른다. 차오른 것이 마음이 되어 넘친다(溢れるこの思い). 넘침은 실패가 아니라 대가다 — 망각을 거부한 값으로 범람을 치르는 것. 시간과 감정이 같은 수로를 쓰고 있다는 것이 이 사슬의 축이다.
그래서 사슬에는 의지가 두 개 감겨 있다. 잊지 않겠다는 의지(堰き止める)와, 울지 않겠다는 의지(沈める). 앞의 것이 물을 차오르게 하고, 뒤의 것이 차오른 물을 도로 누른다. 앞부분은 자꾸 아래로 눌리는데(가라앉히다·삼키다), 앞부분에서 눌려 고여 있던 감정은 사슬의 끝에서 융해를 향한다. 얼어붙은 듯하던 것이 녹아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 — 다만 그 융해는 이 곡 안에서 일어나지 않고, 기다리는 미래로 열려 있다(→[5]). 그리고 엔딩은 두 의지 중 하나만 내려놓는다(→[8]).
이 치환 아래에서는 화자의 정지도 두 겹으로 울린다. 佇む(멈춰 섬)는 걸음의 정지이자, 넘치던 것이 잠시 고인 상태로도 읽힌다. 물이 고이는 것은 둑이 있는 자리다 — 그런데 이 곡의 둑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いつか). 사람들은 지나가고 슬픔도 모습을 바꾸는데(→[2]) 정작 멈춰 있는 것은 화자뿐이니, 시간을 막겠다던 사람이 그날까지 스스로 둑의 자리에 서 있는 셈이다.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자기만 멈춘 채로. 천사가 내려오는 것이 늘 이 멈춤의 순간(佇む·まどろむ)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 移ろい続ける悲しみの色 — "흐려가는"을 고친 이유
처음에는 "흐려가는 슬픔의 빛깔"로 옮겼다. 고쳤다. 이 행을 다시 읽게 만든 것은 앞뒤와의 어긋남이었다 — 이 마음은 넘치고(溢れる), 시간은 맴돌고(巡る), 화자는 멈춰 서 있다(佇む). 그런데 슬픔만 흐려져(옅어져) 간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슬픔이 옅어진다고 읽으면, 앞뒤에 놓인 이동과 정지의 대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어긋남의 뿌리는 세 단어에 있었다.
色는 물감 색이 아니다. 秋の色(가을의 정취), 敗色(패색)의 그 色 — 양상, 기색이다. 悲しみの色는 눈에 보이는 색이 아니라 슬픔이 띠는 결이다. 그런데도 역어에는 '빛깔'을 남겼다. 원문 독자도 일단 色라는 시각어의 겉면을 보고, 그 아래에서 기색을 읽는다 — 그 이중을 역어도 유지하는 것이다. 표면의 이미지는 번역이 지키고, 그 아래는 이 주해가 연다. '슬픔의 결'로 옮기면 뜻은 정확해지지만, 원문이 시각어로 쳐 둔 겉면이 사라진다.
移ろう에는 얼굴이 둘 있다.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옮겨가는 변모, 그리고 빛이 바래며 스러져가는 쇠락 — 사전은 둘 다 싣고 있고, 色와 짝지어질 때는 오히려 뒤쪽이 고전의 기본값이다. 花の色は移りにけりな — 오노노 코마치의 그 유명한 첫 구가 정확히 "꽃빛은 바래고 말았구나"다. 色+移ろう 앞에서 손이 "흐려가는"부터 꺼낸 것은 그러니까 오독이 아니라 관성이었다. 문학에는 오래 반복돼서 이미지와 뜻이 한 몸으로 굳은 짝이 있다 — 벚꽃이라 쓰면 덧없음이 따라오고, 소매가 젖었다 쓰면 울었다는 뜻이 되는 것처럼. 色+移ろう도 그런 짝이고(이런 자리를 토포스라 부른다), 코마치가 그 기념비다. 첫 번역은 천 년 동안 다져진 그 길을 따라간 것이다.
이 가사가 하는 일이 바로 그 토포스를 불러 세워 놓고 배신하는 것이다. 続ける가 못을 박는다 — 계속된다. 바램은 끝을 향해 가는 운동이다. 바래고, 옅어지고, 마침내 사라진다 — 코마치의 꽃빛은 그렇게 끝났다. 続ける가 쇠락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 서서히 바래는 것도 계속될 수 있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변모 쪽으로 기운다. 천 년을 계속 바래기만 하는 꽃은 없고, 앞뒤의 이동·정지 대구가 변모를 부른다. 이 슬픔은 가시지 않는다. 가시지 않은 채, 모습만 끊임없이 바꾼다. 그래서 "끊임없이 변해가는"으로 고쳤다. 코마치의 꽃빛은 다 바랬기에 노래가 맺히고, 이 슬픔은 바래지 않기에 화자가 그 자리에 붙들린다.
고치고 나니 보인 것이 있다. 이 행은 바로 앞 행과 같은 틀이다:
足早に通り過ぎる 人たち — 잰걸음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
移ろい続ける 悲しみの色 — 끊임없이 변해가는, 슬픔의 빛깔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안에서는 슬픔이 변해간다. 밖도 흐르고 안도 흐른다 — 같은 이동의 틀에 놓인 대구다. 그리고 그 두 흐름 사이에 다음 행의 佇む私(멈춰 선 나)가 온다. 모든 것이 흐르는 한가운데 붙박인 정지점. "흐려가는"으로 두었다면 이 대구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지나감(이동)과 흐려짐(소멸)은 다른 운동이라, 평행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지점은 뒤에서 두 번 다시 온다 — 물의 사슬이 화자를 둑의 자리에 세울 때([1]), 그리고 곡의 좌표계가 원점을 찾을 때([6]).
[3] 침묵 — 소리 없는 바람, 침묵하는 천사
제목부터 소리 없는 바람(Silent Wind)이다. 바람은 원래 소리를 내는데 이 바람은 침묵이다. 온통 소리가 지워진 곡 — 다만 이 침묵은 처음부터 주어진 배경이 아니라, 소리가 될 뻔한 것들을 누른 끝에 도달한 고요다. 무엇을 왜 눌렀는지는 한 구에 함께 적혀 있다. 虚ろな言葉飲んで — 삼키는 말이 곧 공허한 말이다. 공허해서, 삼킨다. 마음은 넘치는데(溢れる — 과잉) 말은 비어 있다(虚ろ — 결핍). 담아야 할 것과 그릇 사이의 이 낙차가 이 곡이 침묵인 이유다 — 말이 마음을 실어 나르지 못할 때, 사람은 말을 그만둔다. 虚ろ(우츠로)가 移ろい(우츠로이)와 같은 소리를 쓴다는 것도 적어 둔다(→[2]) — 끊임없이 변해가는 슬픔과 텅 빈 말이, 소리 층위에서는 한 단어처럼 울린다.
그 침묵의 한가운데에 沈黙の Angel(침묵의 천사)이 있다. 내려오는데(舞い降りる) 말이 없다. 그런데 沈黙의 沈은 そっと沈めて의 沈과 같은 글자다. 沈은 물의 글자다 — 沈む(가라앉다)·沈める가 그렇다. 沈黙이라는 단어에 물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글자를 통해 침묵과 물이 겹쳐 읽힌다. 沈んだ声(가라앉은 목소리)라는 관용이 이미 그 겹침 위에 있고, 한국어도 똑같이 말한다. 그러니 [1]의 물 체계와 이 곡의 침묵은 별개의 두 시스템이 아니라 한 시스템의 두 이름이다: 물이 가라앉은 상태가 곧 침묵이다. 마음을 가라앉혀(沈めて) 온 사람에게 내려오는 천사가 하필 침묵(沈黙)의 천사인 것 — 한자 층위에서는 강하게 맞물린다.
그런데 이 한 단어는 문자가 갈려 있다. 沈黙은 한자고, Angel은 로마자다. 일본어 가사에서 외래어 표기가 늘 뜻을 지는 것은 아니다 — 장식으로 쓰이는 자리가 훨씬 많다. 다만 이 곡의 물은 전부 한자로 흐르는데(沈·溢·融·堰), 천사만 그 문자 밖에 있다.
그 천사가 하는 일이 囁きかける(속삭여옴)라는 게 이 곡의 역설이다 — 침묵인데 속삭인다. 속삭임은 가장 작은 소리라서, 듣는 쪽이 조용해야만 들린다. 그러니 이 속삭임이 들린다는 것 자체가 화자가 침묵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여기부터는 가사가 확정한 정체가 아니라, 물의 사슬 위에서 가능한 하나의 이미지 독해다. 무엇을 속삭이는지는 곡이 밝히지 않는다. 다만 沈이라는 글자가 후보 하나를 내밀었다 — 가라앉힌 것들이 침묵의 형상이 되어 되돌아온다고. 그 형상에는 얼굴을 그려 넣을 수 있다. 이 천사는 소리 없이(沈黙), 흔들리며 내려온다(舞い降りる). 소리 없이, 떨리며, 아래로 — 뺨 위의 눈물이 정확히 그렇게 움직인다. 오는 때도 같다. 천사는 늘 멈춤의 순간에 오고(佇む·まどろむ), 눈물이 오는 때가 정확히 그때다. 이 곡에서 울음은 걸음이 멎은 뒤에 온다. 멈춰 섰을 때, 선잠에 드는 밤에, 새어 나온다. 바람 속(風の中)이라는 것마저 그렇다 — 바람을 맞고 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은 불려 나온다. 그렇다면 울지 않는 곡([1])의 절제는 한 겹 더 깊다. 그 눈물의 이미지 뒤에 [4]의 乾いた音이 놓인다는 배열도 눈에 남는다. 다만 둘의 관계를 가사는 밝히지 않는다.
[4] 乾いた音 —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
메마른 소리. 이 곡에 소리는 셋이다 — 천사의 속삭임(囁きかける), 꿈 이야기의 울림(響いて, →[7]), 그리고 이 마른 소리. 셋이 붙들고 있는 동사가 서로 다르다. 囁きかける는 천사 쪽에 서 있고(천사가 나에게 건다), 響く는 소리 쪽에 서 있다(꿈 이야기가 저 혼자 울린다). 듣는 쪽에 서는 동사는 聞こえる 하나뿐이고, 그것이 붙는 소리는 乾いた音이 유일하다. 속삭임은 분명히 도달한다(→[3]). 다만 곡은 그것을 천사의 행위로 적지, 나의 들음으로 적지 않는다. 내가 듣는 사건으로 적히는 소리는 이 마른 소리뿐이다.
다만 정체는 확정하지 않아도 자리는 확정할 수 있다. 流れ·溢れる·沈める·融ける — [1]의 어휘장에서 乾く는 유일한 음(陰)의 항, 물의 부재다. 물이 가라앉은 곳은 고요하고(沈黙, →[3]), 물이 말라붙은 자리에서 소리가 난다. 침묵의 곡에서 내게 들리는 단 하나의 소리가 하필 '마른' 소리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소리에 기한을 달아 읽고 싶어진다 — 다만 여기부터는 문법이 아니라 장면의 읽기라는 것을 먼저 적는다. 문법적으로 まで는 가까이 걸리는 게 자연스럽다. 녹아갈 때까지 계속되는 것은 바로 앞의 것, 뻗은 채 기다리는 두 사람의 지금이다 — [5]가 읽은 그대로. 乾いた音が聞こえてくる까지 두 행을 거슬러 걸기에는 거리가 멀고, 聞こえてくる는 소리가 화자 쪽으로 들려오는 동사라 '~까지 계속'의 자리에 원래 잘 앉지 않는다. 그런데 후렴은 한 장면이고, 이 장면 안에는 이음새가 하나 있다. 마른 소리는 손끝에 와 닿고(指先に), 언젠가 서로 닿는 것도 그 손끝이다(触れ合って). 소리에서 융해까지, 문장은 닿지 않지만 손끝이 닿아 있다. 그 이음새를 타고 장면 전체를 ときまで의 그늘 아래 두면 — 融ける는 글자 그대로 물로 돌아가는 일이니, 맞닿아 녹는 날은 마름이 끝나는 날이고, 이 곡에서 내가 듣는 유일한 소리가 그치는 날이 된다. 곡이 기다리는 미래는 물의 회복이고, 그날 비로소 침묵이 완성된다. 문법의 보증은 [5]에서 끝난다. 그 너머는 장면이 읽게 두었다.
[5] 뻗은 채로 — まで가 만드는 기한
寂しさ 戸惑う指先に / そっといつまでも 二人 / 触れ合って 融けて行くときまで. 원문은 손의 자세를 확정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는 닿을 곳을 찾지 못하는 손끝을, 거두지 않고 허공에 내민 손으로 읽는다. 이 독해에서 戸惑う指先(갈피 못 잡는 손끝)는 거둬들인 손이 아니다. 어디에 닿을지, 닿을 수 있을지 몰라 허공에서 머뭇거리면서 — 거두지는 않는다. 외로움에 떨면서도 손은 내밀어져 있다.
いつまでも(언제까지나)는 여기서 달콤한 영원이 아니라 기다림의 기한이다. 가만히(そっと), 언제까지든, 그 손을 뻗은 채 기다리겠다는 것.
그리고 まで(~까지)가 이 자리의 못이다. 融けて行くときまで — 녹아갈 때"까지". 융해는 이 곡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기다리는 미래다. 触れ合って도 이미 서로 닿은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다만 바로 앞의 戸惑う指先(갈피 못 잡는 손끝)이 아직 닿을 곳을 못 찾은 손이라, 이 곡에서는 그 접촉까지 まで의 그늘 아래 둔다. 곡이 그리는 것은 녹는 장면이 아니라, 녹을 그날까지 손을 뻗은 채 서 있는 지금이다. [1]의 물 사슬이 融ける(녹다)로 끝난다고 했지만, 정확히는 융해에 도달하지 않는다 — 융해를 향해 열린 채 끝난다.
그래서 이 곡의 슬픔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절망이 아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거둬지지도 않았다. 유성에 빈 소원도(→[6]), 막겠다는 말도(→[8]), 뻗은 손끝도 — 전부 미완인 채로, 전부 살아 있는 채로 곡이 끝난다. いつか(언젠가), いつまでも(언제까지나), ときまで(때까지) — 이 곡의 끝은 미래를 향해 열린 시간 표현들로 짜여 있다.
[6] 아래로, 그리고 멀리 — 방향이 바뀌는 곡
이 곡의 운동은 크게 두 축으로 정리된다. 수직 운동의 주된 방향은 아래다 — 마음을 가라앉히고(沈める), 말을 삼키고(飲んで), 홀로 잠들고(眠る), 천사마저 내려온다(舞い降りる). 위로 향하는 운동은 차오름(溢れる) 하나뿐인데, 그때마다 눌린다. 수평으로는 전부 멀어진다 — 사람들은 지나쳐 가고(通り過ぎる), 꿈 이야기는 아득히 멀리 울린다(はるか遠く). 그 두 축의 원점에, 멈춰 선 화자가 있다(→[2]).
그런데 곡 후반에 한 번 위로 창이 열린다 — 流れ星가 흐르고, 夢語り가 はるか遠く響いて. 다만 정확히 하면, 위로 가는 것은 별이 아니라 시선이다. 유성은 떨어지는 별이니까. 내내 발밑을 보던 곡이 처음으로 하늘을 보는데, 거기서 목격하는 것조차 낙하다. 그래도 이 창은 헛되지 않다 —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도' 멀리 울린다는 것. 슬픔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슬픈 채로 멀리 가닿는다.
'별똥별'이 아니라 '흐르는 별'로 옮긴 건, 流れ星의 流가 [1]의 물·흐름 계열이기 때문이다. 여태 지상에서 눌리던 그 流(時の流れ·溢れる)가 여기서 하늘로 자리를 옮긴다 — 물줄기가 위로 방향을 트는 게 아니라, 수로가 하늘에 하나 더 놓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수로에서도 물은 아래로 흐른다. 이 곡의 물은 어디에 놓아도 떨어진다. 심지어 곡이 기다리는 융해조차 솟는 일이 아니라 무너져 스미는 일이다(→[5]).
그래서 이 곡 안에서 방향은 끝내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시선이고, 남는 것은 뻗은 손끝이다 — 전부 멀어지는 세계에서 거리가 0이 되는 단 하나의 사건(触れ合って)을 기다리는 것. 방향이 진짜로 풀리는 자리는 맨 끝, 沈める의 생략이다(→[8]).
[7] 夢語り — 꿈을 이야기함,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이야기
夢語り(유메가타리)의 사전 뜻은 꿈에서 본 것을 이야기함, 꿈속에서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꿈처럼 덧없고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다. 앞의 뜻에서는 말해지는 꿈이 남고, 마지막 뜻에서는 그 꿈의 덧없음이 앞에 나온다. 이 곡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가 문제다.
이 곡에서는 후자로 기운다. 바로 뒤에 はるか遠く響いて(아득히 멀리 울리며)가 붙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라, 닿지 않을 만큼 먼 곳에서 울리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夢은 곡 첫머리에서 이미 규정되어 있다. 儚い夢を見る(덧없는 꿈을 꾼다). 이 곡의 꿈은 처음부터 儚い였다. 그러니 夢語り의 夢도 그 덧없는 꿈의 연장이다.
앞 줄과 함께 읽으면 한 겹이 더 열린다. 流れ星에는 지는 동안 소원을 말하면 이뤄진다는 관습이 있다. 그 렌즈로 보면 夢語り는 유성에 비는 소원이고, 앞뒤 두 줄은 "별이 흐르니 → 꿈을 말한다"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유성은 誰も気付かなくても —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흐른다. 소원의 조건이 무너진 것이다.
다만 여기엔 매듭이 하나 있다. 화자가 유성을 봤다면 '아무도'에서 화자는 빠져야 한다. 시에서는 흔한 전지(全知)로 넘겨도 되지만, 읽기 하나를 나란히 두면 매듭이 저절로 풀린다 — 유성을 은유로 읽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지나가는 별과, 수신자 없이 아득히 울리는 꿈 이야기는 같은 처지다. 나아가 잰걸음들 사이에 멈춰 선 화자 자신과도(→[2]). 이렇게 읽으면 두 줄은 조건과 소원이 아니라 거울이 된다 — 못 본 채 지나가는 별에게, 들리지 못한 채 흩어지는 말이 화답한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도달점은 같다: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夢語り의 두 결은 병렬이 아니라 인과로 묶인다. "꿈을 이야기함"이, 알아채지 못한 유성을 거쳐 "덧없고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말했으나 이룰 수 없게 된 말 — 그 좌절은 밝은 원뜻이 남아 있기에 오히려 깊어진다.
이 자리에서 곡의 말들이 정산되기도 한다. 이 곡에 말은 세 번 나온다 — 삼켜진 말(言葉飲んで: 발신되지 못한 말), 꿈 이야기(夢語り: 발신됐으나 수신자 없는 말), 속삭임(囁きかける: 유일하게 도달하는 말). 화자의 말은 안으로 삼켜지거나 허공에 흩어지고, 끝내 도달하는 말은 천사의 것뿐이다(→[3]). 말하기가 전부 실패한 곡에서 유일하게 성립하는 소통이 듣기라는 것 — 화자가 말을 그친 자리에서만 그 채널이 열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ても)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자리의 핵이다. 이뤄질 리 없음을 알면서도 비는 태도는, 막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堰き止めて(막으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화자와 같다(→[8]). 이 곡의 화자는 내내 그렇다 — 안 되는 줄 알면서 그만두지 않는다.
[8] 닫히지 않는 사슬 — 마지막에 가라앉히지 않는다
인트로와 엔딩은 같은 줄로 시작하는데, 마지막 한 줄이 다르다.
인트로: 溢れるこの思い / そっと沈めて…
엔딩: 溢れるこの思い 〔여기서 끝〕
엔딩은 인트로의 '가라앉힘(沈めて)'을 빼먹는다. [1]의 물 사슬(막다→넘치다→가라앉히다→녹다)이 끝에서 닫히지 않는 것이다. (Uta-Net·UtaTen 모두 마지막 행을 溢れるこの思い에서 끝낸다 — 두 데이터베이스의 전사가 일치한다.)
이 회귀부터가 장치다. 곡은 처음의 두 줄로 돌아와 끝난다. 그리고 생략이 일어나는 바로 그 문장이 巡る(맴도는)로 시작한다 — 시간이 맴돈다고 노래하던 문장이 실제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오고, 돌아와서는 끝을 잃는다. 같은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없어진 것이 보인다. 엔딩이 다른 줄이었다면 沈めて의 생략은 생략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맴돎은 이 생략의 측정 장치다.
인트로의 沈めて에는 이미 말줄임(…)이 달려 있었다 — 가라앉히는 행위부터가 끝맺지 못하고 흐려졌던 것. 그 …이 엔딩의 생략을 미리 씨 뿌린 셈이다.
그래서 이 곡은 슬픔을 해소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억누르기를 멈춘다 — 넘친 마음을, 이번엔 가라앉히지 않고 그대로 둔다. 이 곡에서 위로 향하는 운동은 차오름 하나뿐이었고 그때마다 눌렸는데, 그 누름이 그치는 자리가 여기다([6]이 미뤄둔 '방향이 풀리는 자리').
다만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사라진 것은 沈める(가라앉혀)뿐, 堰き止めて(막아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두 동작은 다르다 — 堰き止める는 흐름을 막으려는 의지이고, 沈める는 이미 넘친 것을 눌러 재우는 행위다. [1]에서 사슬에 감겨 있던 두 개의 의지가 여기서 갈린다. 남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의지, 내려놓는 것은 울지 않겠다는 의지 — 기억의 둑은 지키고, 감정의 수문은 여는 것이다. [1]의 등식대로 이 곡의 눈물이 溢れるこの思い라면, 이 생략의 뜻은 하나로 모인다: 잊는 것만은 끝까지 거부하고, 우는 것은 마침내 허락한다.
그리고 이 둘은 별개의 결정이 아니다. 둑을 지키는 한 물은 다시 차오른다 — [1]의 수로가 그대로니까. 잊지 않기로 한 사람에게 넘침은 앞으로도 올 것이고, 그걸 알면서 둑을 놓지 않는다. 안 되는 줄 알면서 그만두지 않는 화자([7])의 마지막 자리다. 그러니 남은 堰き止めて는 다짐이면서 각오다 — 계속 넘치겠지만, 더는 그 넘침과 싸우지 않겠다는.
엔딩이 지운 줄에 실려 있던 것이 沈めて만은 아니다. そっと(가만히)도 하나 실려 갔다. 이 곡의 そっと는 두 가지 용법으로 쓰인다 — 억압의 そっと(そっと沈めて)와 기다림의 そっと(そっといつまでも). 지워지는 것은 앞엣것뿐이라, 누르는 가만히는 사라지고 기다리는 가만히만 남는다.
번역은 이 생략을 조사 하나로 받았다. 인트로의 "이 마음을"에서 엔딩은 '을'을 거둬 "이 마음"으로 끝낸다 — 동사를 기다리는 목적어가 아니라, 아무 동사도 오지 않을 명사로. 원문에서 沈めて가 비운 자리를, 한국어에서는 을이 비운다.
울지 않는 곡([1])은 그렇게, 눌러 온 눈물을 처음으로 누르지 않는 자리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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